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에너지 위기? 오일 쇼크란?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에너지 위기? 오일 쇼크란?
70년 대 오일쇼크는 73년과 79년 두 차례 발생했는데요. 먼저 1,2차 오일쇼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차 오일쇼크 (1973~1974)
1차 오일쇼크의 원인은 아랍 8개국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발생한 제4차 중동전쟁입니다. 이 전쟁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면서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아랍 8개국이 패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랍 8개국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한 서방 국가들에 대항하여 원유 수출을 중단하고 가격을 인상해버린 것입니다. 이 당시에 서방국가들의 석유의존도가 53%로 매우 높았기 때문에 유가 인상에 무방비로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고, 배럴 당 2~3달러하던 유가가 4배나 오른 12달러에 팔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중동을 포함한 산유국들은 역사적인 호황기에 접어들었고, 산유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심각한 불황을 겪게 되면서 서방 국가들이 높은 석유 의존도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2차 오일쇼크 (1978~1979)
2차 오일쇼크의 원인은 이란의 정부가 교체되면서 발생한 '이슬람 혁명' 입니다. 79년에 이란 혁명으로 인해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이슬람에 입각한 공화국 신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는데 이때 이 신정부는 서방 국가들과 관계를 끊고 원유 수출을 중단해버립니다. 서방 국가들이 팔레비의 망명을 도왔다는 이유로 보복한 것이죠. 이란은 당시 총 석유 공급량의 15%를 점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1차 오일쇼크 때보다 컸고, 유가가 무려 40달러까지 치솟았다고 합니다. 이 당시 한국 경제는 석유 의존도가 높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던 때였기 때문에 다른 선진국가들보다 더 타격이 컸습니다. 실질 성장률도 경제 개발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2.1%)를 기록했고 물가상승률은 무려 28.7%, 실업률은 5%가 넘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택시들도 LPG 엔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하죠.
3차 오일쇼크 위기?
물론 지금까지 유가가 급격히 오를 때마다 3차 오일쇼크 위기라는 말은 항상 나왔었습니다. 올해 8월 모든 에너지 자원들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3차 오일쇼크가 시작된다는 말이 무성했습니다. 지금(11월)은 다행히 에너지 자원들의 가격이 조금씩 안정화되어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이상 안심하기는 이를 것 같습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일 뿐 아니라 가장 큰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석탄의 주요 공급국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에너지를 10번째로 많이 소비하는 국가이면서 에너지의 93%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원유 수입액은 동기간 대비 67.9%나 증가했고, 가스와 석탄 등 전체 연료 수입은 70.7% 증가했다고 합니다. 일단은 유류세를 법적 한도까지 낮추어 유가를 잡기는 했으나 언제 또 오를지 모르는 것이죠.
전 세계는 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최대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하는데요. 프랑스는 실내 난방온도를 19도로 제한했고 덴마크는 내년부터 오후 6시~자정까지의 전기요금을 그 전 시간보다 7배나 높게 적용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에너지 소비율이 높고 에너지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나라인만큼, 또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3차 오일쇼크로부터의 대응을 미리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체 에너지를 개발하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소비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추진하면서 현재 고소비, 저효율 구조를 저소비, 고효율 구조로 바꾸도록 해야 합니다.